꿈을 가진 자가 승리한다 / 차윤 (주)CPR 대표

꿈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꿈을 가진 자는 강하다. 꿈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기에 때론 유행도, 전통도, 국경도, 역사까지도 바꿀 수 있다. 마틴 루터킹 목사를 비롯한 많은 미국사람들의 꿈이 모아져서 현실주의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젊은이고 늙은이고간에 꿈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꿈을 키워주어야 한다. 


해군에서 제대를 하고 나와서 60년대 후반에 자그마한 회사를 차렸다. 각 분야의 재주 있는 사람들을 등록시켜 능력별로 분류하고 수요를 찾아서 공급하는 ‘맨 파워(Manpower)’ 회사이면서 당시에는 매우 어려운 일로 인식되어있던 ‘국제회의 진행’ 업무도 때로는 맡아 하기도 했다.


똑똑한 인재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대학생인 H양에게 도움을 청했고, 원했던 외국어 실력에는 못 미쳤지만 예리한 판단력과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part-time 인턴으로 함께 일을 하기로했다.


몇달쯤 됐을 무렵이다. 뉴욕 한국 총영사관의 홍성욱 총영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라왔다. 홍총영사는 나의 외삼촌이다. 편지내용인즉 총영사관 업무에 미국인 직원 쓰기가 크게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일에 있어서도 별 도움이 안되니, 자네가 고급인력을 확보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적당한 사람을 선발해서 외무부 경유해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일은 희귀한 케이스였기에 많은 후보자가 있었으나 이렇다할 적격자가 없어서 홍총영사의 수차에 걸친 독촉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하면서 애를 태우고 있던 어느날 미국 유학을 꿈꾸고있던 H양이 자기가 적격이라면서 만족할정도는 아니지만 일도배우고 계획했던 공부도 열심히 해서 좀더 넓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싶단다. 

무엇보다도 현재 나를 도와 사람 뽑는 일에 열중해야 하는데 회사를 떠나겠다는 의사표시였기에 보스(Boss)로서 섭섭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 섭섭함도 잠깐 그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왜 내가 그녀를 뉴욕으로 보내지 않으면 아니 되는지를 잔잔한 말투로 설득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미국에가서 공부를 계속하는것이 꿈이었고 그것도 꼭 뉴욕엘 가고 싶어했다. 뉴욕엘 가야 하는 큰이유는 그곳엔 유엔이있고 그외에 많은 국제기구들이 자리를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그동안 유엔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제기구들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왔다. 그림엽서, 스탬프, 만국기가 걸려있는 유엔의 정면사진, 유엔 총회 개최광경, 그리고 유엔에 관한 기사등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제기구의 역사, 기능, 조직, 유엔가입국 명단 등에 대해서도 ‘유엔 통’이라 할만큼의 광범위한 지식도 갖추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놀랐다. 그리고 감동을 받았다. 내 개인 형편이나 회사 사정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다음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H양은 다니던 학교도 멀리한채 외무부의 필요한 절차를 거쳐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입성하였다.


수개월이 지났다. 홍총영사로부터 편지가 왔다. 좋은 사람 보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일에 충실한 H양 덕분에 미국인 직원도 내보냈다고 한다.  적은 봉급으로 제대로 된 아파트를 구할수 없었기에 영사관내 직원숙소에서 임시로 거주하면서 영사관의 업무를 충실하게 맡아하는, 이 자그마한 아가씨 때문에 총영사관이 활기가 충만해있다는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쁘고 뿌듯했는지 지금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그래도 나의 걱정은 그녀의 영어실력이었다. 서신연락은 영어로만 쓴다는 약속을하고 떠난지 처음 몇달은 힘들게 쓴 흔적이 보이더니 여러달이 지나면서 영어다운 영어로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후 한동안 편지가 뜸해 웬일인가 했더니 뉴욕에 있는 그 유명한 Hunter College 에 다니느라고 바빠서 편지도 못썼노라면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주었다. 얼마 안 가서 그녀의 영어가 너무 세련되어져서 내가 답장 쓰는 것을 꺼려하기에 이르렀다.


일년쯤 지났나… 그녀를 딸같이, 한가족같이 돌봐주던 홍총영사로부터 긴 편지가 날라왔다. 우루과이 대사로 발령이 나서 임지에 부임하려는데 대사관엄무에 없어선 안될 H양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학업관계로 가기가 어렵다고 하니 설득해달라는 간절한 편지였다. 물론 나는 H양이 왜 우루과이 대사관으로 갈수없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홍성욱 대사가 우루과이 대사로 부임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H양으로부터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져 왔다. UN에 채용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UN에 채용되려면 보통 2,3년 전에, 최소 1년 전에 지원서를 내놓고 전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경쟁자들과 어려운 심사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면접 및 필기시험등을 거쳐야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H양은 언제 UN에 지원서를 냈단 말인가? 알고 봤더니 이미 총영사관의 추천을 받아 일찌감치 지원서를 냈었다고 한다. 아마도 2년 만에 인터뷰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던 것 같다. 결국 H양은 끈질긴 추격 끝에 어릴 적부터 꾸어오던 그 평생의 꿈을 실현하게 된것이다.


H양이 UN에서 근무시작한후 그녀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나도 이집트로 도쿄로 근무지를 옮겨 다니면서 바쁘게 지내야 했기에 서로 연락이 닿지 못했다. 단지 간접적으로 들리는 소식은 한결같이 H양의 ‘슈퍼우먼’ 같은 활약상이었다. H양이 처음 뉴욕에 와서 한국 총영사관에서 보여준 그런 희생, 헌신, 열정을 맡은 일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쏟아 부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UN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고 잠비아, 마다가스카, 자메이카, 루마니아등 80여개의 개발도상국을 돌며 보여준 그녀의 희생정신이 모든 UN 관계자 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 현재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내가 H양으로 불러왔던 그분이 바로 지난 2월 5일 KBS 2TV의 “지구촌 네트워크 한국인”프로에서 소개된바 있는 국제연합개발계획(UNDP) 양성평등국장 한석란씨이다. 한국장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루마니아 주재유엔대사로 있으면서 큰 공을 세워 루마니아 대통령으로부터 ‘그랜드 크로스’라는 최상급에속히는 공로 훈장을 받은바 있고 그외에도 수많은 수상 경력의 그녀는 현재 UN에서 남성과 여성의 고용비율을 50대 50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의 책임자로서 혼신을 바쳐 일하고 있다.

그 한석란 국장이 내달 3월1일부터 약 1주일간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해외에서 한국을 빛내고 있는 해외동포에게 주는 ‘KBS 해외동포상’이 한석란씨에게 수여될 예정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꿈을 가져라. 꿈을 가지고 목표를 정하고 실패를 두려워 말고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그 길을 평탄케 하신다. (끝)



한석란 선생님을 보면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첫째, 자신의 꿈을 가지고 미지세계에 도전하는 자세가 있다.
둘째,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자신을 매번 새롭게 했다.
셋째, 맡은 일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으로 '조직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넷째, 그 결과 한국의 회사에서든 뉴욕 총영사에서든 추천을 받아 다음 자리로 이동했다.

<한석란 UNDP국장 관련 인터뷰 모음>
유엔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 가운데 최고 선임자급

"여성이 가정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사회적으로도 성공하려면 남편의 협력이 필수"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국제무대에 나서라"



[인터뷰] 한석란 UNDP(유엔개발계획) 양성평등국 국장

UNDP 한석란 국장, 국제무대에서의 생생 경험 전해

여성부, UNDP 한석란 국장 초청 간담회

<인터뷰> 한석란 UNDP 양성평등국장(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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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Trackback 0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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