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에 대한 많은 논의와 사례를 접할 수록 재미난 발견을 하게 됩니다. 바로 '적정기술'에 대한 상이한 중심축의 존재입니다. 어떤 분들은 적정기술의 '적정'에 보다 많은 중심을 둬야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그룹은 적정기술의 '기술' 부분을 강조하지요.

적정기술이 '적정'에 초점을 맞출 수록 적정기술은 세계관과 철학적인 논의로 의미의 확장이 이루어집니다. 반면, '기술'에 초점을 맞출 수록 제3세계에 쓰이는 실용적인 제품이자 서비스로서 적정기술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사실, 그 두 축을 다 바라봐야 겠지요?

저는 기술의 원래 이름이 적정기술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금 일부 기술은 '인간 이해의 적정' 범위를 벗어난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를 '싱귤레러티'(singularity)라고 하지요.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이해를 벗어나서 자율적으로 발전하고 진화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싱귤래러티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적정기술을 처음 접할 때, 일종의 희열과 충격을 접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일종의 삶의 변화('지속가능한 삶으로의 변화')가 뒤따라야겠지요. 그런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는, 현재 한국에 일고 있는 적정기술의 돌풍은 말 그대로 계절성 폭우로 잠깐 언론과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로 끝날 수 있습니다.

적정기술의 생활화, 적정기술의 실천화가 앞으로 한국에 만들어갈 '적정기술 2.0'의 과제입니다. 적정기술을 '아프리카에 필요한 기술'이란 관점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도록, 이러한 '생활화' 관점의 담론과 논의도 필요합니다. 함께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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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어떤 분께서 외국인들에게 적정기술 관련 발표를 한다며 제게 문의를 한 질문에 제가 답변을 한 내용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나누면 좋을 듯 싶어 아래에 함께 첨부합니다.

지난 8월 방문한 말라위 한 시골에서 발견한 '자전거발전 원리의 워터펌프'
삶의 깊숙한 곳에 연결된 이러한 적정기술을 현지인들은 '적정기술'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워터펌프'라고 부른다.



1. 이 기술로 인해서 정말 제 3세계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는가? 궁금합니다.

김정태= 한 예로 International Development Enterprise란 곳이 있습니다. 전 세계 소작농에게 '족동식 관개펌프'(tredle irrigation pump)를 25불에 공급하는 곳인데, 현재까지 150만명이 이를 구입하였고, 2~3배 이상 연간소득이 증가하여,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결과가 있습니다. 제3세계 절대빈곤층의 대부분은 소작농(100평 평균 경작)이고, 물 공급만 제대로 된다면 자급자족용 작물 외에 시장에 팔 수 있는 고부가가치 작물재배 및 판매를 통해 새로운 소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과연 적정기술이 어떤 효용이 있는냐는 접근은 우선 '빈곤'이란 무엇이며, 그 정의에 따른 빈곤의 해결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에 따라 상이한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원조'가 해답이라고 보는 관점에는 적정기술이 환영받지 못하겠죠.

 

2. 이 기술이 제 3세계 사람들의 어느 정도에게 혜택을 주고있는가 입니다. 소수인지, 몇 %정도가 이 기술의 혜택을 보고있는지, 현재 증가하는 중인지, 현재 상태가 궁금합니다.

김정태= 정확한 통계가 없어서 답변드릴 수가 없네요. 적정기술 기반 개발접근(appropriate technology-based developmental approach)는  개발현장에서 꾸준히 진행되오다가, 최근에는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흔히 ODA(공적개발원조)와 AID(원조)가 개발도상국 정부를 통해 집행이 되어, 주로 도로, 학교, 병원 등 기간시설에 집중되는 데 반해, 적정기술은 일반 현장의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방식입니다.

 

3. 왜 보통사람들이 이 기술에 대해서 알아야하는지 물어본다면, 왜 알아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정태= 한국이나 선진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정기술'이 하나의 세계관이자 철학이란 관점에서 살펴볼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벌어나는 다양한 경제위기, 금융위기, 에너지위기, 기후변화 등의 공통점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관련되어 있는데, 과연 우리에게 발전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기술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되짚어보게 합니다. 슈마허가 말했듯이 적정기술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관점에서 중앙화보다는 탈중앙화의 미덕을 입증하며, 대규모를 숭배하는 현대사회에 경종을 올립니다. 로마가 왜 망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 중 하나는 로마가 건설했던 대규모 인공 관개수로가 지탱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라는 접근도 있습니다.

 

4. 보통사람들에게 이 기술에 대해서 설명을 했더니, 결국 우리가 할수있는건 (그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기부가 아니냐는 의견을 받았습니다. 적정기술 제품을 사거나 그 단체를 위해 기부하던, 그냥 기부하던, 어차피 보통사람들의 행동면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 보통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기부 밖에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정태= 적정기술은 쉽게 말해 '기술이 아닌, 인간의 진보를 가치에 두는 기술'을 총칭합니다. 따라서 적정기술의 기획과 개발, 설계와 디자인의 과정에 '보통사람'의 경험과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사람은 어디에 살든 비슷한 경험과 불편함,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용자경험(UX; user experience)을 공헌할 수 있지요. 또한 적정기술의 완성은 다양한 전공과 전문분야의 협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용어때문인지 '적정기술'을 기술의 한 분야로 생각하시는 분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적정기술에는 엔지니어, 디자이너, 기업가, 인문학, 개발전문가, 현지활동가 등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적정기술 운동이 보다 발전해야할 부분이지요.


5. 적정기술은 그 현지에 꼭 필요한 물품을 그 현지사정에 맞게 싸고, 현지수급이 가능하고, 지속가능하게 무언가를 개발하는것이라고 공부했습니다. 어떤 글을 읽다가 가르쳐 주는 것과도 연관지어 설명하던데 제가 이해를 잘 못해서인지 완벽하게 매치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설명해주실수 있으신지...

김정태= 적정기술의 좁은 범주에서의 정의에 따르면, 적정기술이란 "현지의 재료를 통해, 현지인이, 현지에서 제작하고 유통,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그것이 가장 지속가능한 방법이겠지요. 외부에서 나는 재료일 수록, 수입이나 가격문제, 유통의 문제로 확보가 어려울 경우,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데, 개발도상국에 흔히 보급되는 '디젤식' 관개펌프나 발전기 등이 그런 예입니다. 석유 값이 오를 수록, 석유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 그냥 작동을 멈추게 되겠죠.  또한 최근까지도 현지에서 운용하지 못하는 최신기계 설비등의 병원을 설립하고, 화려하게 '개막식'을 하면서 지역신문에서 소개가 되지만, 1년이 되기도 전에 문을 굳게 닫아두는 곳도 많습니다. 현지에서 수리나 운용할 인력이 없어, 일단 고장이 나면 외부에 의존해야 되니까요. 적정기술은 이렇듯 '의존성'(dependency) 대신에 '주체성'(ownership)을 확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6. 또 현지에 사회적기업을 만들어서 현지인들이 생산하고 현지인들이 산다고하면, 자급자족이 가능한 것이 되는 것인데, 현지인들이 그것을 살 경제적 여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태= 일부 절대적 빈곤지역을 제외하고는 현지에서 화폐가 통용되고, 경제적 여력이 존재합니다. 제가 말라위, 캄보디아, 스리랑카, 부룬디에서도 구석구석 시골 깊숙이 들어가도 그곳엔 시장이 존재합니다. 학교 아이들은 하루에 한국돈으로 약 50원 정도를 군것질로 쓰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이 이에 대한 오해가 많은 듯 합니다. 적정기술은 완전보급형으로 전달이 되면, 많은 부분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판매형 또는 부분보급형이 보다 적절한 접근입니다. 구매력이 없는 지역에 긴급구호는 그대로 진행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의 구호적 접근은 현지의 역량과 기업가정신을 파괴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7. 전 세계를 통틀어서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태= 네, Appropedia라는  곳도 존재를 합니다. 적정기술이란 이름보다는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other 90%), '소셜혁신'(social innovation), '피라미드저변이론'(Bottom of the Pyramid) 등 다양한 인접영역에서도 접근이 되기에, 개발학계, 디자이너, 건축인, 사회적기업가 등 관련된 전문가들의 활동이 많습니다.

 

8. 이 분야의 전문가로써 앞으로 이 기술의 행보를 어떻게 보십니까?

김정태= 시대적인 도움이 확연히 눈에 띕니다. 과거 경제가 한창 잘나가던 것과 같이 보이던 시대에 '적정기술'의 메시지는 초라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통해 비록 자발적이지는 않았더라도 전 세계가 지금의 '확대발전지향적 경제모델'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가다듬고 있습니다. 즉, 위기시대가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가지게 만든 셈이죠. 그런 배경 아래 적정기술의 역할은 앞으로도 확산되리라 봅니다. 현재 한국에 빠른 속도로 논의되는 적정기술의 흐름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최근엔 정부에서도 '36.5도의 과학기술'을 주창하며, 국가적인 적정기술 정책을 추진하고도 있습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적정기술이 2011년을 원년으로 한국에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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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Trackback 0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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