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온지 이제 한 달이 되어 늦은 감이 있지만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적정기술미래포럼에서 기획을 해서 관련되어 활동을 하는 분들이 다양한 분야(디자인, 비즈니스, 지속가능성, 자원활동, 국제협력 등)와 관련되어 적정기술의 접근을 쓴 '융합 개론서'입니다. 


저는 '적정기술과 비즈니스'에 대한 부분과 에필로그 부분을 썼습니다. 적정기술과 관련해서는 지난번에 홍성욱 교수님과 함께 쓴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살림지식총서)에 이어 2번째 서적입니다. 적정기술에 있어 개발협력과 비즈니스의 접근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본격적인 첫 시도라고 할 수 있는 글입니다.  적정기술 분야에 있어서는 '비즈니스' '현지의 적정기술 기획과 개발을 위한 비즈니스모델' 등의 주제로 계속 글을 써나갈 생각입니다. 많은 견해와 의견, 충고 부탁드립니다. 





[에필로그]

적정기술은 세계관이자 플랫폼이다

김정태

 

적정기술의 다양한 접점을 소개한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은 적정기술이 지닌 의미가 단지 ‘기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의미와 넓은 활용 범위를 지닌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기술’을 넘어선 적정기술을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첫째, 적정기술은 특정한 사고의 방향, 사고의 관점을 가리키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적정기술을 낮은 수준의 기술이나 도구의 활용, 첨단기술의 배척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정기술은 기술수준과 활용장소와 상관없이 우선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경제의 외부효과를 통해 발생하는 각종 사회문제와 GDP의 성장과는 반대로 빠르게 저하되는 것이 느껴지는 삶의 질 앞에서 적정기술은 대안적인 세계관을 제안한다. 이러한 적정기술 세계관의 특징은 기술의 수준이 아닌 사용자 경험을 우선시하며, 발전을 위한 발전보다는 지속가능을 위한 발전, 집약적 성장보다는 분산적 성장, 세계화보다는 현지화, 개인중심보다는 공동체중심의 경향을 포함한다. 최근 적정기술의 적용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개발협력 현장 외에도 적정기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할 만큼 치밀하고 완성도가 높은 세계관이자 전략이다.



적정기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슈마허는 적정기술을 논의하면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했다. 최근 지속가능발전 논의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인 생체모방학(biomimicry)을 통해 그의 통찰력 있는 전략의 진정성과 적실성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생체모방학이란 35억년 이상 지난 발전해온 지구 생태계의 최적의 패턴과 원칙을 인간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용하고자 하는 접근을 말한다. 자연은 가장 혹독한 환경과 조건, 자원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아프리카의 흰개미들이 40도가 넘는 대지에서 개미집을 짓고 살아가는 패턴의 발견과 적용을 통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는 원활한 통풍을 통해 서늘한 기온이 자연적으로 유지되는 쇼핑몰이 세워지기도 했다. 생체모방학에서는 해결하고자 하는 이슈를 파악한 후에 자연의 패턴을 확인하고 원칙을 발견하기 전에 먼저 다음의 질문을 하게 된다. “이 문제는 어떻게 자연에서 해결하고 있는가?” 우리의 지속가능하지 못한 인위적이고 대증적인 수준의 세계관이 아니라 자연이 지속가능한 최적화된 방법으로 발전해온 관점으로 눈을 돌릴 때 생각지도 못했던 발견들이 이루어지게 된다. 


적정기술이 세계관이라고 했을 때, 현대사회에 적정기술이 기여하는 최고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빈곤, 에너지, 물부족, 기근, 도시발전, 농업발전, 생물다양성 등 현대의 급증하는 이슈에 우리는 적정기술이 가진 세계관을 통해 “이러한 이슈를 우리는 어떻게 지속가능하며 분권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볼 수 있게 된다. 즉, “어떻게 적정화할 것인가?” 질문인 셈이다. 질문이 올바르게 될 때 올바른 답변이 비로써 가능해진다.

 

세계관으로서의 적정기술에 이어 두 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적정기술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이다. 이 책을 통해 시도되었듯이 적정기술은 다양한 영역과 흐름과 접속하고 융합하는 장(場)의 역할을 한다. 『플랫폼 전략: 장을 가진 자가 미래의 부를 지배한다』라는 책은 혁신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적 능력이 아니라 ‘플랫폼 전략적 사고’”라고 말한다. 다양한 행위자들이 모여 시너지를 발생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하므로 동반성장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바로 플랫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플랫폼으로서의 적정기술은 과학기술 분야뿐 아니라 국제개발, 디자인, 도시개발, 비즈니스, 공공정책 등 다양한 영역을 끌어들이고 있다. 국제개발이 적정기술이란 플랫폼에 함께 하면서 ‘인간중심의 지속가능한’ 개발접근 논의가 만들어져 왔다. 디자인과 적정기술의 만남은 이미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반절 이상이 거주하게 된 도시의 다양한 문제는 적정기술 플랫폼을 통해 ‘소외된 90%와 함께 하는 디자인’이란 융합을 이루고 있다. 스미소니언연구소에서 발간되어 한국어판 발간을 앞둔 동일한 이름의 사례집은 슬럼지역에 거주하는 소외계층이 유한한 자원과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창의성과 수완을 발휘하는 지를 놀랍게 묘사하고 있다. 비즈니스 또한 적정기술이란 플랫폼에서 과거에는 유통되지 못했던 사회기술과 사회서비스를 유통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영역들이 적정기술이란 플랫폼에 연결되면서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적정기술이 가진 사고체계로서의 올바른 방향성과 더불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구체적이며 실용적인 도구적 활용성도 포함되어 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외부효과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를 방지하고 상쇄하기 위한 수많은 자원의 소비로 저하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위기 앞에 적정기술이 가진 플랫폼의 가치는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는 ‘적정투자’ ‘적정소비’ ‘적정발전’ 등과 같은 용어의 사용은 적정기술의 플랫폼에 더 많은 사회경제 요소가 연결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적정기술을 비유하자면 적정기술은 유연한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적정기술은 형태와 쓰임을 달리한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소득수준이 어떠하든 주어진 ‘그릇’에 따라 적정기술의 ‘형체’는 달라진다. 필자가 현재 체류하고 있는 영국은 2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빗물활용’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영국 주요일간지인 가디언지는 “영국의 물 문제는 물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 채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하며 그 해결책으로 가구별 빗물저장시스템(rainwater catchment system)을 제안했다. 캄보디아에서 방문한 지역에서도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빗물받이 항아리를 활용하고 있었다. 빗물저장 시스템의 비용, 모양, 성능 등도 다르고, 영국과 캄보디아의 소득수준도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그곳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즉, 지속가능한 해결책으로서 적정기술이 유연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슈마허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을 때 그것은 ‘작은 것이 편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라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작은 것, 분산화 되고, 지속가능한 적정기술은 현대사회가 독점적인 권리인 것 마냥 제시하는 ‘편리성’을 반드시 동반하지는 않는다. 적정기술은 불편함에 오래 동안 경시되어왔던 인간중심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선사한다. 많은 경우 편리성은 인간 대신 기술을 앞세웠고, 복잡한 기술과 시스템의 논리에 인간을 소외하곤 했다. 앞서 언급한 생체모방학이 던지는 핵심질문과 같이 세계관이지 플랫폼인 적정기술은 우리에게 편리가 아닌 올바른 것의 관점에서 우리가 당면한 복잡한 이슈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도울 것이다. “어떻게 적정화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을 기대해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Trackback 0 :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