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2)



1. 국제활동가로서의 첫걸음 

1) 불편함과 현실이 만나는 순간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인 유엔. 나는 왜 그곳을 떠났을까? 

누군가에게 왜 어떤 조직에 들어갔느냐를 물어보는 것보다 왜 그 조직을 나왔느냐고 물어볼 때 훨씬 의미있고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은 통상 내게 '유엔에 어떻게 들어갔나요?'라고 묻는다. 질문의 방향은 묻는 사람의 욕구를 반영한다. '유엔'이란 곳에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 더 흥미로운 질문은 '유엔에서 왜 일하게 됐나요?'라고 물어볼 때이다. 소셜이노베이터는 '왜'(why)라는 관점을 우리가 통상 익숙하게 여기는 사회현상과 문제에 연결한다. 사회문제가 '왜'와 결합되면서 우리가 느끼기 시작하는 불편함은 거대한 사회혁신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스파크와도 같다. 


"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은행은 없는 것일까?"

"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특별함'이 아닌 '장애'라는 관점에서만 이해될까?"

"왜 생리대가 없어서 개발도상국 여자아이들은 학교를 빠질 수 밖에 없을까?"

"왜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공급자 위주의 사업은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왜 꼭 영리와 비영리의 가치를 구분해서 접근해야 할까?" 


'왜'라는 질문이 계속되면서 소셜이노베이터는 때론 '안된다'(no)는 현실을 절감하며 낙담할 수도 있다. 이때 어떻에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다. 다만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으면, 불현듯 언젠가 '왜'(why)라는 불편함과 '안된다'(no)라는 현실이 겹쳐지면서, '왜 안돼?'(why not?)의 단계로 나아간다. 소셜이노베이터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고전적인 만화로 사랑받는 뽀빠이(Popeye)에도 이러한 순간이 있다. 만화 주인공인 뽀바이의 여자친구 올리브가 깡패에 붙잡히거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뽀빠이는 그 유명한 대사를 외친다. 뽀빠이 모멘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I can't stand any more) 그리고 그 유명한 시금치를 먹은 후 뽀빠이는 때론 무모한 상대에 맞서기 위해 달려나간다. 소셜이노베이터는 뽀바이와 비슷하다. 여자 친구가 겪은 곤란이 뽀빠이를 불러내듯, 사회가 처한 문제가 소셜이노베이터를 초청한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경험했던 일이 있다. 집이 있는 한성대입구역(4호선)에서 당시 회사가 위치해 있던 교대역(2, 3호선)까지는 출퇴근 시간에 무척 붐비는 노선이다. 보통 앉아서 가질 못하고 서서 가는데, 그날은 한성대입구역에서 타자마자 황급히 내리는 누군가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따뜻한 온기가 올아오는 의자에 앉으니 잠시였지만 무척 기분이 좋았다. 몇 정거장 지나 4호선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는 충무로역이 다음 역임을 알리는 노래소리가 들리자 나는 가방을 무릎 위에 세웠다. 그리고 나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앞에 서 있던 몇몇 승객이 내 자리를 향해 반보 정도 압박하며 들어오는게 아닌가. 


'어라? 내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묘한 감정과 함께 나는 충무로역에서 자리를 지켰다. 앞에 있던 승객들은 기대와 다른 내 행동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날 앉아있던 나는 서있는 승객과 함께 긴장감있는 감정의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4호선을 타고 계속 내려오면서 사당역에서 환승해야 다시 교대역(2호선)으로 갈 수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선바위역까지 가서야 지하철 자리를 사수하는 레이스는 끝났고, 나는 '지하철 자리를 지켜냈다'라는 미묘한 승리감과 함께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여기까지 읽으니 어떤 느낌이 드는가? 충무로역까지 앉아갔던 부분까지는 논픽션이고, 충무로역에서부터는 사실 각색을 더한 픽션이다. 다만 잠깐 앉게 된 자리를 양보하기 싫은 마음이 강하게 든 것은 사실이었다. 누구나 '지하철 자리'를 두고서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잠시 맡겨진 명예와 권력을 무소불위로 착각하기도 하고, 다음 단계로 도전해야할 상황에서 현재의 자리에 그냥 주저 앉고만다. 환승을 통해 맞닥뜨릴 불확실보다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일지라도 일단 확보된 자리에 앉아있는게 당장은 안정감있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유엔이 그러했다. 유엔이 좋은 직장임은 분명했다. 다만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왜'라는 질문과 함께 나는 유엔이라는 곳에서 나와 '환승'을 해야할 때임을 절감했다. 하지만 유엔이라는 자리에서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유엔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과 좋은 대우를 받았던가! 내게서 '유엔'이라는 키워드가 사라질 때도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매력적으로 느낄지 확신이 없었다. 


당신 역시 소셜이노베이터라고 느낀다면,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그 어떤 화려한 자리나 순간이라도 잠시 앉아가는 지하철의 안락한 자리임을. 지금 잠시 잡고 있는 '황금 지팡이'가 사실은 만원 지하철에서 운이 좋아 잡고 있는 플라스틱 손잡이임을. 소셜이노베이터는 지금 당장의 가치로 미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불확실해도 자신이 원하는 목표역으로 가기 위해 환승이라는 도전을 택한다. 치타공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자신에게 보장된 길을 가던 한 인물이 이러한 '환승'을 통해 'why not?'이란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우리에게 사회적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 이야기다.   


환승이야말로 소셜이노베이터를 나타내는 특별한 키워드이다. 당신은 어떤 환승을 경험했는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언제 어떠한 환승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전글] 2014/03/02 - [연재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다음글] 국제활동가로서의 첫걸음_2) 인문학 전공자라는 이유때문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소셜앙터프러너 단호비전 Trackback 0 :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