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8]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 

1) 소셜이노베이터가 지치지 않는 이유 




국제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누린 여러 특권 중 하나는 많은 기회들에 도전할 자격이 생긴다는 점이다. 대학원생이라는 신분과 더불어 '국제'라는 꼬리표가 붙은 국제대학원생은 내 경험상 기업이나 공공기관, NGO 등 어느 곳에서나 호감을 가지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 그리고 인턴십 등에 지원을 했다. 그 중에 하나는 당시 외교통상부의 인턴십이었다. 유급인턴과 무급인턴으로 구분되어 지원을 받았는데, 어떻게든 외교통상부에서의 인턴을 하고 싶어 무급인턴에 지원했고 1지망으로 원했던 유엔과에서 약 2개월의 인턴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내 인생의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시작됐다.


유엔사무총장 선거 캠페인의 일부가 되다 

외교통상부(현재 외교부) 유엔과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출마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금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었다. 내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는 "역대 유엔사무총장의 인적사항과 사무총장 선출 배경 등에 대한 정보를 찾아 문서로 만들어라"였다. 내가 인턴을 시작했을 당시는 몇몇 유력한 국제적인 인사들이 유엔사무총장에 도전하겠다며 다양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었고,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 유엔사무총장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던 때였다.


'유엔사무총장이야 유명한 분들이니깐 쉽게 자료를 찾겠지'라고 생각했던 조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국어로 된 제대로 된 자료가 전무했고 결국 외국 웹사이트와 영문자료를 참고해서 역대 유엔사무총장의 인적사항과 사진, 주요 약력, 선출된 배경 등을 요약한 한 페이지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비록 인턴이었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낌과 동시에 내겐 작은 불만족도 싹트기 시작했다. 유엔 그리고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중요한 기관과 리더십에 대해 잘 정리된 1차 자료가 왜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이었다.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첫 만남 

가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님이 유엔과에 내려와 '은밀한' 선거캠페인 준비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격려해주시기도 했다. 한번은 유엔과장님이 사무실의 전체 직원 한명 한명을 돌아가며 소개했다. 제일 마지막으로 인턴 자리까지 찾아온 장관님에게 과장님은 모든 직원들이 듣게끔 큰 소리로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여기는 무급인턴 김정태 씨입니다." 왜 하필 '무급'이라는 표현을 붙였을까? 어리둥절 얼굴이 빨개졌지만 반기문 장관님은 내게도 따뜻한 악수를 청해주셨다. 이 분을 훗날 잠시나마 외신보좌역으로 함께 했고 내 석사논문의 한국어 번역본인 <살림지식총서 유엔사무총장>을 직접 선물해 드리는 등 다양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불만족을 논문 주제로 연결하다 

인턴을 마치면서 내가 써야할 석사논문의 주제가 보다 뚜렷해졌다. 유엔사무총장 캠페인에 작게나마 참여하면서 느꼈던 유엔과 유엔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주제였다. 인턴으로 있으며 조사했던 많은 참고자료가 있어 주제를 비교적 쉽게 정할 수 있었는데, 논문 제목은 "두 영역의 외줄을 타는 유엔사무총장: 유엔사무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분석적 접근"(The UN Secretary-General "Walking a Two-Scope Rope": An Analytic Approach to the Secretary-Generalship)으로 정했다. 유엔사무총장이 '국제정치의 현실'과 '개인적인 리더십 특성'이라는 두 가지 영역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하는 존재라는 가설에 따라 역대 유엔사무총장과 유엔과 국제분쟁의 다양한 사례를 교차 분석한 논문이다. 


논문을 쓰면서 대부분 참고한 자료는 영문자료였다. 특히 역대 유엔사무총장이 남긴 회고록과 전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료구입비가 필요했는데, 내 상황으로는 무척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서창록 교수님께 찾아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교수님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더니 누군가에게 내가 가져온 30여권의 해외 원서 리스트의 책 모두 구매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렇게 내가 필요한 모든 자료가 준비됐고, 약 3개월에 걸쳐 30여권의 원서와 별도의 30편의 관련 논문을 꼼꼼이 읽어나갔다.


이때의 경험이 다른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내가 연구논문을 쓰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는데 있어 크나큰 자신감의 원천이 된 것은 확실하다. 그 어떤 어려운 주제라도 내가 흥미를 갖는 적절한 범위의 가설(hypothesis)을 세우고, 그 범위 내의 굵직굵직한 선행연구와 최신사례 등을 차근차근 읽어나갈 경우 유용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주제, 하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는 인터넷서점에 해당 키워드로 검색을 해서 관련 서적을 대량 구매해 먼저 읽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소셜이노베이터가 자신의 전공이나 전문분야가 아님에도 어떤 특정 이슈에 진입하는 방법이 바로 이와 같다. 소셜이노베이터는 해당 문제와 관련된 선행연구를 통해 '무엇이 실제 효과가 있으며'(what works) '무엇이 실제 효과가 없는지'(what does not work)를 교차 분석하면서 제3의 대안이나 보다 혁신적인 해결책을 모색해간다. 



내가 경험한 문제에서 시작하면 지치지 않는다

논문 작업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한 대학원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논문작업이 너무나 행복했다. 깊은 밤 홀로 자취방에서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자료를 읽어가는 시간들이 나는 가슴 벅찼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내 개인적인 불만족으로부터 석사논문 주제를 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념적이며 관념적인 주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공감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할 때 그것이 논문이든 프로젝트이든 비즈니스 기획이든 그 모든 과정은 벅차고 행복할 수 밖에 없다. 논문이 훗날 대학원 최우수논문상을 타고, 저널에 실리고, 해외 컨퍼런스에 가서 발표하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던 것은 내가 얻었던 부수적인 선물일 뿐이었다. 


소셜이노베이터가 반쯤은 흥분한 상태로 느껴지고, '이 사람은 왜 저리 들떠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이 문제라고 느끼는 주제에 뛰어들 때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과정도 이들에게는 가슴 벅찬 경험이 되곤 한다. 



논문 원본(영문)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에서 다운로드 확인이 가능하며, 한국어 요약 형식으로 출간된 <유엔사무총장>(살림지식총서)도 있다.  

http://me2.do/IM5Jnxo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95930&cid=505&categoryId=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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