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0]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부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 

3) 소셜이노베이터의 리더십: 거버넌스




유엔본부 인턴십과 컨설턴트, 그리고 헤리티지재단에서의 짧은 객원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내 생에 첫 풀타임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외교안보연구원과 모 대형NGO에 서류심사와 면접까지 진행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결국 입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알고 지내던 후배에게서 오랜 만에 이메일 하나를 받게 되었다. "형, 유엔에 관심 많지 않았어요?"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하는 중 유엔거버넌스센터란 곳의 채용공고를 우연하게 봤는데, 딱 내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당시 공고된 채용분야는 홍보담당관이었다. 언론홍보나 커뮤니케이션 전공은 아니었지만, 일단 지원해보기로 했다. 서류와 영어논술을 마치고 면접에 참여하게 됐는데, 남자 지원자는 나와 다른 한 분이 더 있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분은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유창한 영어에 당시 국회위원 비서관으로 있던 분이었다. 나는 굳이 비교하자면 국내 국제대학원을 나왔고, 이제 서른살에 처음으로 직장을 구하는 취업준비생이었을 뿐이었다. 면접 결과 누가 채용되었을까? 



역량이 스펙을 이길 수 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채용절차를 주관한 팀장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저였나요?' 그 분의 설명을 요약하면 '김정태 씨는 채용한 다음날부터 곧바로 홍보담당관 업무를 시작할 수 있을거라는 명확한 증거가 보였다'는 것이다. 지원서류를 제출할 때 나는 유엔관련 석사논문과 더불어 그 동안 인터넷뉴스인 오마이뉴스와 뉴스파워 등에 기고한 유엔 관련 기사([속보] 첫 한국인 UN사무총장 탄생할까? 등)와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원 시절 작성해 코리아타임즈에 기고한 영문칼럼(Forte of Korean UN Secretary-General) 등을 함께 첨부했다. 관련 포트폴리오를 첨부하라는 요청사항은 없었지만, 관련 전공이 아니고 관련 직장경험도 없던 내게는 꼭 선보여야 할 카드였다. 전공이나 자격증, 학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역량의 증거물들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가 되는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해당 경험은 몇년 후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를 쓸 때 '스토리'(역량)가 '스펙'(자격증 등)을 이길 수 있다는 기본 컨셉의 배경이 되었다. 



거버넌스와의 만남  

유엔거버넌스센터(UN Project Office on Governance)는 2006년 9월에 한국에 설립된 유엔사무국 산하기관이다. 나는 이곳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생소한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개념은 '미래사회에 조직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와 '우리는 어떻게 공동의 목표를 멋지게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전략 프레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이 프레임이 동일하게 소셜이노베이터의 조직에 대한 관점이자, 소셜이노베이터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거버넌스라는 알쏭달쏭한 단어는 어떤 뜻일까? 사실 내 블로그(www.theUNtoday.com)에 검색해서 들어오는 유입 키워드 중 가장 많은 단어가 바로 거버넌스다. 거버넌스의 의미를 알고 이를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1%(50만명)에 속할 만큼 많지 않은데, 거버넌스는 기술적으로는 '의사결정 과정'(the process of decision-making)을 의미한다. 과거 그러한 의사결정 과정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권위적인 정부의 정책이라던지 카리스마가 강한 리더가 있는 조직이 그렇다. 이에 반해 참여성, 투명성, 효과성 등의 3대 특징을 가진 거버넌스를 굿거버넌스(good governance)라고 한다. 


거버넌스 분야의 최고 석학 중 하나인 가이 피터스 교수는 "거버넌스는 steering(조향 또는 조정)이다"라고 간결하게 정의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의해보면 거버넌스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심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조정해가는 과정'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그러한 핵심 이해관계자는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시민사회 등이 해당되고, 국정(국가) 거버넌스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학계 등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조직 단위에서의 거버넌스는 무엇이며, 핵심 이해관계자는 누구일까? 



개인이면서도 한 팀으로 움직이는 축구팀

거버넌스는 마치 11명이 참여하여 펼치는 멋진 축구 시합과도 같다. 멋진 축구시합이란 달리말해 11명의 선수들이 시합에서의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공격수나 수비수 등 각자의 포지션을 가지고 참여하되(참여성), 필요한 경우 격의 없는 의견교환과 포지션에 상관없이 필드를 넘나들어(투명성), 한 팀으로서 최고의 팀워크와 사기를 높여 멋진 이야기를 만드는(효과성) 것이라 볼 수 있다. 11명의 선수들은 누가 시키거나 통제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아니다. 이들은 각자 공통된 목표에 대한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지고, 항상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속도감있게 움직인다. 주장이나 감독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시한다면, 이들은 항상 명령과 통제만을 기다릴 뿐 각자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활용하거나 신뢰에 기반한 규모있는 집단행동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없게 된다.  


거버넌스는 복잡계(complexity)라는 과학이론과 맞닿아있다. 자율과 자유가 허용되는 시스템에서는 일사분란한 통제와 수직적인 위계질서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창의성과 혁신성의 발현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보이기에는 느슨하고 질서가 없다고 느껴지는 조직이 성과가 더 높을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조직 구성원이 멋진 축구팀에서처럼 각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를 위해 필요한 리더의 절제 

거버넌스가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리더의 일방적인 명령과 통제는 구성원의 섬세한 주인의식이 싹트지 못하게 하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조직의 의사결정권이 자신만의 고유한 권한임을 강조하는 순간 구성원들은 더이상 자신의 포지션을 넘나들며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헌신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한 사람의 강력한 리더와 열 명의 수동적인 부하직원으로 구성된 팀과 다섯 명의 공동리더로 구성된 팀 중 어느 팀이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게 될까?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나는 이러한 거버넌스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그 중 하나는 유엔의 공식잡지 <유엔크로니클> 한국어판을 기획해 발행하는 '유엔크로니클코리아'(UN Chronicle Korea)라는 청년대학생 주도의 국제이슈 그룹이다. 이 그룹에는 강력한 리더나 대표가 없이 수평적인 거버넌스 체제로 운영된다. 외부에서 그룹을 대표하는 GM(General Manager)이라는 사람은 있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그룹 구성원의 토의를 통해 결정된다. 이전에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배운적도 없고, 수평적인 역할과 의사결정 참여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처음에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이러한 갈등 중 하나는 '왜 우리는 강력한 리더가 없고, 각자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거친 이들은 '거버넌스 리더십 훈련이 인생을 바꾸었다'고까지 말한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수동적인 구성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주인의식을 가지고 업무에 참여하자 상사의 평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거버넌스는 모든 구성원이 리더(주인)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프레임이다. 




소셜이노베이터와 거버넌스 

거버넌스가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은 문제의 해결 과정에 특별히 주목하는 소셜이노베이터와도 긴밀히 연계된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소셜이노베이터의 모습은 거버너스를 통해 주인의식을 갖춘 핵심 이해관계자의 모습과 일치한다. 흔히 마주치게 되는 소셜이노베이터에게서는 통상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추종자를 끌어모을 수는 있지만, 자신과 비슷한 역량있는 리더들을 초청하지는 않는다. 소셜이노베이터에게 필요한 사람은 추종자가 아니다. 자신과 같은, 혹은 자신보다 기량이 뛰어난 사람들과 한 팀을 이루어 소셜이노베이터는 사회문제라는 '경기'에 뛰어든다. 결국 '경기'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한 팀으로서의 개인들'만이 참여할 수 있고, 그런 팀이어야 혹독한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소셜이노베이터 당신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인가 거버넌스인가? 당신이 초대하는 사람은 추종자인가 아니면 당신과 같은 주인의식을 갖춘 파트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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