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1] 어떻게 하면 소셜이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요?


2부 유엔에서 바라본 세계 

4)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5년간의 유엔에서의 근무는 내게 강의와 책을 통해서만 엿보았던 '국제'라는 세계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에 맡은 업무는 홍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전략 및 아웃리치(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전략적 접근) 등이었다. 당시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 홍보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국내 사례나 롤 모델이 없어 나는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사실 당시 유엔거버넌스센터의 홍보담당관(Communications and Outreach Officer)은 국내 소재 유엔사무소를 통들어서도 유일한 홍보관련 전문인력이었다. 이런 독특한 포지셔닝으로 나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공식적인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 외신기자를 담당하는 보좌역으로 차출되기도 했다. 4박 5일 동안 청와대에서의 이명박 대통령 내외 접견과 회담을 비롯해 모든 공식일정을 함께 하면서 나는 국제기구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아웃리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경험적으로 깨달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해서 필요하다고 발견한 전략의 핵심은 바로 고객가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었다. 사실 유엔의 업무에서는 구체적인 고객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죽했으면 유엔에 입사할 때 지원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되는 유엔의 8대 핵심역량(core competencies) 중 하나가 '고객지향'(client orientation)일까. 대부분의 기업에게 고객지향은 여러가지 기준 중 하나가 아니라, 불변의 DNA(조직문화)일 것이다. 하지만 유엔은 전 세계 정부간 조직(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으로서 특정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과 달리 책임져야할 구체적인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매년 수억 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받아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개발도상국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주제를 발굴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다양한 사업을 개발하면서도 도대체 내 고객은 누구일까라는 고민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고객을 찾아 가치를 전달하라 

한번은 법무부에 난민지위 신청을 한 난민들이 센터에 찾아온적이 있다. 개발도상국의 굿거버넌스 증진을 목표로 하는 센터 입장에서 난민 이슈는 소관 업무가 아니었다. 당시 시청역 근처에 있던 센터의 200m 근처에 유엔난민기구(UNHCR)가 있었는데, 빌딩 앞에 걸린 유엔기를 보고 우리를 유엔난민기구로 오해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라크와 콩고 출신의 난민들이었는데, 이라크 난민의 경우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교갈등으로 살해위험을 받아 한국에 난민신청을 했다고 했다. 짧게나마 이들이 기구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안타까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이곳은 유엔난민기구가 아니니 다시 그곳으로 찾아가세요" 정도였다.


이들을 돌려보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리 내 소관 업무가 아니라지만 유엔의 존재 미션을 생각해볼 때 '이건  아니다'라고 느껴졌다. '내가 만약 그 난민이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불안한 난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우선 유엔난민기구를 자세히 찾아갈 수 있는 지도와 함께 국내에 난민 지원 사업을 펼치는 NGO 연락처와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포함해 나름대로의 media kit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찾아오는 난민들에게는 어떤 배경으로 난민이 되었는지 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경청했다. 5분이든 10분이든 잠시나마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어줄 때 이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media kit를 건네주고 인사를 할 때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도움은 받지 못했지만, 수없이 고맙다는 인사와 밝은 미소를 내게 건내주었다. 보이지 않는 고객을 파악하고, 고객에게 어떻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빛이 보이던 경험이었다.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통상 고객이 잘 보이지 않는 유엔에서 나는 고객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은 현재 공공부문(1섹터), 기업부문(2섹터), 시민사회(3섹터) 등과 협력하며 임팩트비즈니스와 사회혁신 분야의 다양한 기획과 사업운영을 진행하는 내게 강력한 자산이기도 하다. '진짜 고객은 누구인가?'부터 시작해 '고객의 숨겨진 필요는 무엇인가?' '내가 고객이라면 나는 어떤 가치를 전달받길 원할까?'와 같은 단순해 보이는 질문에서 시작할 때 만들어지는 서비스나 프로그램은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해 고객가치 창출이란 관점에서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고객의 필요와 가치를 찾아가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 등 다른 글에서 다시 충분히 다룰 예정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난민캠프에서 한 소녀에게 건넨말이 최근 SNS를 통해 회자된 적이 있다. 외지에서 온 봉사자들에게 겁을 먹은 아이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가야,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거야" 도움을 받는 아이의 관점에서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할지 깨달았던 것이다. 그 순간 아이는 새로운 희망이자 나라의 미래와 같은 존재로 탈바꿈한다. 고객이 누구인지 아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출처: 페이스북 '오늘의 JPG' 



소셜이노베이터와 이노베이터의 차이 

이와 같이 소셜이노베이터가 항상 잊지 말아야할 질문은 '내 고객은 누구인가?'이다. 소셜이노베이터(social innovator)가 그냥 이노테이터(innovator)가 아니라 소셜(social)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단 이유는, 직접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고객과 사용자의 이해관계까지 고려해야하는 숙명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으로 재학 중이든, 아니면 일반 회사에 다니든, 취업을 준비하고 있든 그 어떤 환경에서도 '내 고객은 누구일까?'라고 질문해 보아라. 그리고 숨어있는 고객을 발굴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어떤 가치가 필요한지 생각해본다음, 자신의 가용자원 내에서 가능한 가치를 전달해보아라. 이러한 고객중심의 가치발견과 가치전달의 경험을 하나의 작은 사이클로서 경험한다면, 소셜이노베이터로서 당신은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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